찬반논란 불거진 양날의 칼 '낙태'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10-02-02 13:24:00    조회: 3,950회    댓글: 0
  찬반논란 불거진 양날의 칼  '낙태 ' 

 '생명존중 VS 불가피한 선택 ' 악순환 고리 언제까지?

최근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지난해부터 낙태 근절 운동과 함께 시술 의사에 대한 고발도 이어지고 있어 대부분의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정부에서는 적출물 불법 폐기 관련한 단속에까지 나서고 있어 현실적으로 낙태가 불가능 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낙태를 선택해야 하는 여성들은 대책 없는 근절이라며 발만 구르고 있다. 몇 달 사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낙태 찬반 논란 양상을 살펴봤다.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낙태 시술을 받았다.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유학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됐지만 남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이고 부모님께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며칠 밤을 고민했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직장도 그렇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각서까지 써야 시술
고민 끝에 산부인과를 찾은 A씨는 낙태 시술을 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다른 병원을 수소문해 봤지만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의사는 물론 본인도 처벌을 받는다며 절대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물론 각서의 효력은 별 의미가 없겠지만 양쪽 모두 처벌받을 수 있는 문제임을 각인시켜 주며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이다. A씨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낙태를 해야 하는 현실에 눈물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
 
근절 운동에 단속까지
최근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는다. 원래 불법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낙태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이 적극적으로 낙태 시술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파장이 크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 의사회는 지난해 ‘프로 라이프 의사회’로 이름을 바꾸고 낙태 근절 선포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의사회는 단순히 낙태 근절 운동뿐 아니라 원치 않는 낙태를 강요받는 사례나 낙태 시술 병원에 대한 제보를 받아 고발을 하겠다고 나서 그 여파가 산부인과는 물론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환경부가 낙태 시술 때 나오는 적출물 불법 폐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동안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별 제재 없이 이뤄졌던 낙태 시술은 ‘올 스톱’하게 되었다.
 
사례비까지 줘 가며 병원 찾아
실제로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산부인과 10여 곳에 전화해 낙태 시술을 문의했지만 “우리는 낙태는 하지 않는다”라는 차가운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또 그동안 시술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강남 지역 일부 산부인과를 직접 찾아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 단속이 심해져서 더 이상 시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상황 때문에 인터넷에는 시술이 가능한 병원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한 포털 사이트에는 시술 병원과 비용 문의와 함께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알려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어 낙태 시술 병원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케 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설사 시술을 한다고 해도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
수소문 끝에 낙태 시술을 한다는 서울 외곽의 한 산부인과를 찾아가 시술에 대해 문의해 봤다. 병원 관계자는 목소리를 낮추며 “진찰을 받아 봐야 하지만 시술은 가능하다”고 대답하며 “너무 이르거나 늦은 경우에는 힘들 수 있으며 가격은 현금으로 기본 40만원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단속이 심해져 카드는 절대 안 된다는 것. “이 근처에서 시술하는 병원 찾기 힘들다. 예전에 했던 △△ 산부인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관계자는 여전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도 왜 이 병원에서는 시술을 하느냐고 묻자 “그건 의사 선생님의 개인적인 선택이다. 대부분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상황인 걸 알기 때문에 시술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낙태 시술을 묻는 전화는 물론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애매모호한 법조항 
형법 269조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또한 7년 이하의 자격 정지도 함께 받는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법 14조는 강간·근친상간 및 ‘임신의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임신의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대한 해석이 애매모호하며 그동안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는 이를 악용해 차트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진료 기록을 작성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28조에는 ‘이 법에 따라 낙태수술을 받은 자와 한 자는 형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어 처벌을 무력하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14조 상의 예외규정을 벗어나 낙태를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기 때문에 모자보건법이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모자보건법의 현실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법률 사이에서 한국 사회는 암묵적으로 낙태를 허용해 왔으며 15~44살 여성의 연간 낙태율이 1000명당 평균 29.8명으로 미국(21.1명)이나 영국(17.8명)을 뛰어넘어 실질적 낙태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렇게 법률 자체가 낙태를 금지하는 것인지 혹은 허용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태 시술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연간 30만 건이 넘는 낙태 시술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태 부추기는(?) 사회
과거 낙태는 출산율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1970년대 ‘하나 또는 둘’이라는 자녀의 숫자를 강조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피임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던 그 시절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두 번쯤 낙태 경험을 갖는 것은 다반사였다. 또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 감별을 통한 낙태 시술도 적지 않았다.
현재 낙태의 원인은 부실한 성교육과 피임 의식으로 청소년 및 미혼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을 꼽을 수 있다. 첫 성경험을 하는 연령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당히 기본적인 맥락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피임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며 낙태가 피임의 한 방법으로 악용되는 분위기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또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보호 장치의 부재도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각 지역마다 미혼모 보호 시설이 운영되고 있지만 대부분 입양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출산 후 곧바로 입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8년 한 해에만 1114명의 미혼모의 아이들이 해외 입양을 떠났다. 한 부모 가정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월 5만에 그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미혼모의 출산이 육아로 이어지기는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미혼모가 되지 않기 위해 낙태를 선택하거나 시설에서 아이를 낳아 입양시키는 것이다. 혹시나 양육을 한다 해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가부장적인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또한 과도한 양육비용의 부담으로 둘째나 셋째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양육비용의 사회적 책임론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낙태 근절 운동을 펼치고 있는 ‘프로 라이프 의사회’는 이번 기회에 낙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상덕(아이온 산부인과) 원장은 그동안 낙태 시술을 하면서 느꼈던 부조리함 때문에 이번 낙태 근절 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낙태 ' 악순환 고리 끊어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자행되어온 불법 낙태 시술을 거부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며 “뱃속에 있다는 이유로 생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급락하고 있는 출산율 때문에 대부분의 중소 산부인과에서는 출산을 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으며 “낙태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괜찮은 벌이가 되어 왔다”며 “산부인과 의사들도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낙태 시술을 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의사로서의 양심을 속이는 낙태 시술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술대에 오른 그 어떤 여성도 진심으로 낙태를 원하지 않았으며 괴로운 기억으로 평생을 죄책감 속에 지낸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낙태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 ‘프로 라이프 의사회’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 미성년 임신, 장애아 임신 등 거의 모든 경우의 낙태를 반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심 원장은 “낙태가 불가능한 현실 때문에 미혼모가 급증하게 된다면 현재 불법인 낙태 관련 법률을 수정하거나 미혼모나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늘리지 않겠느냐”며 이번 근절 운동이 사회적 부조리를 그냥 덮어둔 채 낙태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원장은 “비록 현재의 급격한 변화에 따르는 음성적 시술이나 원정 낙태는 있을 수 있지만 비용이나 위험성 때문에 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출산이 가능한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러한 부작용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며 그것이 바로 ‘프로 라이프 의사회’가 추구하는 최종의 목표라고 전했다.
심 원장에 따르면 불법 낙태 병원에 대한 제보가 이미 10여 건 넘게 들어왔으며 낙태 시술 병원 관계자, 배우자나 여자 친구가 동의 없이 낙태 시술을 했다는 남성의 제보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접수된 제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물을 추가해 2월 중에 1~2곳 정도를 시범적으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로 라이프 의사회는 불법 낙태 병원에 대한 고발에 이어 의료계, 종교계, 일반인이 함께하는 ‘낙태 안하는 병원 이용하기 운동’과 ‘범국민 낙태 근절 100만인 서명 운동’을 계획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혀 낙태 근절 운동 확대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단속 실효성은 ‘글쎄’
대한산부인과 의사회는 낙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그 접근 방법은 달리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회는 최근 낙태와 관련하여 일반 여성 1293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진행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산부인과 전문의와 임신 및 피임상담’을 내세웠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낙태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피임교육을 통한 정확한 피임방법’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78.4%에 달했지만, ‘단속강화’라는 응답은 13%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특히 정부와 프로 라이프 의사회의 최근 활동과 관련,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응답자 58.5%가 “근절이 어렵다”고 답해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고 산부인과 의사회는 밝혔다.

여성의 생존권은 누가 보장하나
여성단체 역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김희영 활동가는 “대부분의 여성이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선택하는 현실에서 낙태 찬성·반대의 단순한 공방은 의미가 없다”며 “임신과 출산, 낙태 모두 여성의 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실한 성교육 등 사회 근본적인 이유로 자행되는 낙태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물어서는 안 되며 이는 의사 개인의 윤리적인 선택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히며 “낙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환경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 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근절 운동에 대해 김씨는 “음성적인 낙태 시술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며 이는 여성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 제도 자체의 변화도 필요할 것”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김홍미리 활동가 역시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음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며 “생명권 이전에 여성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의견을 전했다. 또 “낙태를 찬성한다고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는 위험하다. 무조건적인 낙태 근절은 음성적 낙태를 양상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다”고 밝혔다.
낙태에 대한 논란이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만 양분화되는 것은 우려해야 할 일이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생존권 혹은 자기 결정권 중 어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일 뿐 단순히 한 가지 가치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낙태가 국가의 출산율 조절로 허용 또는 금지되는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하며 ‘필요악’으로 존재해온 우리 사회가 최선의 해법을 찾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률이나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동감하기 때문에 낙태의 ‘양날의 칼’ 공방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간현대> 박근애 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