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가정폭력상담소: 결혼과 인생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09-11-17 15:16:00    조회: 4,544회    댓글: 0
  결혼과 인생(80)
출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발행 월간 「가정상담」10월

이혼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

얼마 전, 지인이 텔레비전에 나갔다. 우리 나이로 육십인 그분이 마침 책을 한 권 펴내서 그 책을 본 방송국에서 방송출연을 제안했고, 고심 끝에 지인은 출연을 허락했던 것이다. 아침 시간대의 생방송인 그 프로는 대단히 유명한 장수 프로였다. 자그마치 65분이나 소요되는 큰 방송이기에 사전 취재를 아주 충실히 하는 것 같았다. 환경운동을 펼친 이라 그가 펼친 운동, 그가 살아온 이력,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등이 사전 취재의 내용들이었다.
취재팀이 돌아갈 때였다. 피디가 그분에게 말했다고 한다.
“가능하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그래야 시청자들이 감동을 받습니다.”라고.
피디가 돌아간 뒤, 지인은 그 아리송한 말을 해석하기를, 이혼을 한 사실을 감추기보다 깨놓고 밝히는 게 좋겠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한다.
시나리오는 두 세 차례 오고가면서 수정과 첨삭이 되풀이 되었다. 시나리오의 질문에는 “이혼을 하셨다면서요?”라는 구절이 있었다. 지인은 그 질문에 대해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방송 당일, 연구소의 몇 사람들과 생방송 현장에 갔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직전, 지인은 내게 “굳이 감출 이유도 없을 것 같애요”라고 말했다. 어느 대목을 말하는지 느끼고 있는 나는 “그러세요. 그게 큰 이슈가 되면 안 되지요”라고 답했다.
아나운서 둘이 진행자이고 정신과의사와 탤런트, 개그맨으로 구성된 패널이 있었고, 동원된 방청석의 주부들이 있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기어이 출연자의 이혼사실을 넌지시, 조심스러운 얼굴로 질문했다. 출연자는 가볍게 “그리고 이혼을 했지요”라고 답했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방청석에서는 짧은 술렁임도 있었던 것 같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자연스러웠다. 공중 앞에서 여성 출연자가 자신의 이혼사실을 가볍게 밝히고, “아하, 그러셨군요”라고 넘어가는 것도 우리 사회의 의연함과 성숙도를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 후, 살아온 이야기, 자랄 때 이야기 등이 한참 더 진행되었는데, 고정 패널로 참석한 탤런트가 이야기의 맥락과 관계없이 이혼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왜 이혼하셨어요?”라고 탤런트가 물었다. 출연자는 “제가 여기서 그것까지 다 밝힐 까닭이 없잖겠어요. 더 이상은 제 사생활이라 그냥 넘어 가지요”라고 답했다. 패널이 이혼 이야기에 집착하는 바람에 결국 그가 펴낸 책이야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65분이 끝나버렸다. 나는 패널이 두 번째 이혼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그 얼굴은 매우 조심스럽고 정중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동정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고약한 악의를 느꼈다. 그 질문을 할 때 패널이 지었던 살얼음을 밟는 듯한 조심스러운 표정도 사실 얼마나 위선적인가? 이혼이 왜 그리도 조심스레, 끈질기게 질문해야 할 일인가? 이혼은 특별한 사람만 체험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감동적이고 좋은 프로가 진행자와 패널이 이혼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흔한 말로 썰렁해졌다. 진행자나 패널이나 방청석의 위로하는 듯한 위선적인 반응에서 나는 사람들이 아직도 이혼을 실패라고 여기는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이혼은 결혼이 깨졌을 뿐이지 결코 삶의 실패는 아니건만, 이혼한 이들이나 이혼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것을 감춰야 하는 일이거나 밝히면 동정하고 위로해야 하는 일로 간주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들은 그러나 이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나이든 세대들과 다를 것이다. 훨씬 자연스럽고 대범하게 이혼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이혼을 권장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지만, 그런 젊은이들이 나는 이번 방송 진행자들의 위선보다 훨씬 당당하고 믿음직스럽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제천가정폭력상담소 : 643-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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