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냉가슴 앓는’ 남자 성희롱 <천태만상>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09-08-03 10:34:00    조회: 4,120회    댓글: 0
  ‘벙어리 냉가슴 앓는’ 남자 성희롱 <천태만상>


‘더듬고 만져도’ 속으로만 ‘끙끙’
많은 이들에게 성희롱이나 성폭행의 가해자는 남자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자만 피해를 당한다는 것은 옛말이다. 직장이나 학교 안에서, 혹은 데이트 중에 여성으로부터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시원하게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 피해를 당한 남성들의 공통적인 심경. 피해사실을 말해봐야 돌아오는 건 ‘부럽다’는 반응이나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그런 꼴을 당하느냐’는 핀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 모욕으로 인한 수치심은 여성들만큼이나 심각하다는 것도 피해남성들의 말이다.

1년 전 한 의류업계 회사에 입사한 정모(30)씨는 출근길이 두렵기만 하다. 특히 회식이 있는 날은 전날 밤 잠까지 설칠 정도로 회사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이유는 여자 상사들로부터 당하는 성희롱. 정씨는 입사할 때만 해도 남자인 자신이 성희롱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여직원이 많은 회사니 성희롱을 했다고 오해받거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고. 이 때문에 행동이나 말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고 한다.

첫 회식부터 성희롱
‘진땀 나네’
그러나 정씨는 첫 번째 회식자리에서 쓸데없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희롱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 술이 거나해진 여자 상사와 동료들이 서로 정씨를 옆에 앉히려고 각축전을 벌일 때만 해도 웃어넘겼던 정씨. 하지만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성희롱의 농도도 짙어갔다. 술기운을 빌미로 상사들은 점점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밀착시켰고 아무렇지 않게 가슴팍을 쓰다듬는 일도 예사였다. 질펀한 성적농담도 난무했다. 물론 타깃은 그였다.

남자 부하직원 상대로 한 여상사들의 성희롱 도 넘어
짓궂은 농담과 과도한 신체접촉 해도 성희롱 인식 못해

정씨는 그날 상사에게 들었던 농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한 상사가 갑자기 날 보면서 ‘OO씨는 새우 안주 많이 먹어. 그래야 잘 세우지’라고 말했다. 순간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상사들과 동료들은 폭소를 터트리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아닌가. 뒤늦게 뜻을 알아 챈 뒤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야한 농담을 맞받아칠 만큼 뻔뻔하지 못했던 정씨는 한참 동안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악몽 같은 첫 회식을 치룬 정씨는 다음 날 찝찝한 기분을 안고 출근했다. 상사들을 볼 때마다 전날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성적 모욕을 줬던 상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잖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상사들을 보면서 뭐라고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정씨는 ‘술김에 장난친 건가’란 생각으로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회사생활을 했다.

성적농담에
신체접촉까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희롱의 횟수는 늘어만 갔다. 술자리뿐만 아니라 사무실 안에서도 수시로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과 신체접촉이 일어났던 것. 정씨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이었다고. 남자 상사들과 주로 일을 하는 친구들은 “여자들이 예뻐해 주니 회사 다닐 맛 나겠다”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고 가족들은 “네가 우습게 보였으니 장난을 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그를 탓했다.

결국 정씨는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홀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 짓궂은 농담도 무덤덤하게 받아치는 노하우까지 생겼단다. 정씨는 “여자들은 성희롱을 하고도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성희롱을 당한 뒤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는 여자들이 부러울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처럼 직장 내에서 여자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남자직원은 적지 않다. 2005년 노동부가 직장인 2만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남성 응답자 1만580명 가운데 6.6%인 698명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한국노총이 금융·관광·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남성 조합원 1027명을 상대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14.7%의 응답자가 “회식 자리에서 여성 상사로부터 춤추자고 강요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이와 더불어 7.6%의 남성은 “입맞춤은 물론 가슴이나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여성 상사가 만졌다”고 응답해 직장 내 남성 성희롱의 심각성을 보여줬다.성희롱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남성들이 많아 그 수위도 더욱 높은 경우가 많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모(21)씨도 성희롱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씨를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았던 이는 같은 업소에서 청소를 하는 40대의 아주머니.


성희롱 대상 1순위
골프·수영·헬스 강사

처음엔 ‘아들 같다’며 친절하게 대해주던 아주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갖은 성희롱을 하기 시작했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건 예사이고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툭툭 치거나 만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참다못한 이씨는 점장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처음 그의 말을 들었던 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엄마 같은 사람이 장난 좀 친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며 넘기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그제야 점장은 아주머니를 불러 성희롱사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점장의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사과는커녕 “증거 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이에 조목조목 그동안 당했던 일을 말하는 이씨에게 아주머니는 “자식 같아서 쓰다듬은 것뿐인데 그게 무슨 성희롱이냐”라며 되레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씨는 “사과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며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니 앞으로도 성희롱이 계속 될 것 같아 결국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여성들과 살을 맞대기 쉬운 직업을 가진 남성들도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잦다. 골프나 수영, 헬스 등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그들. 특히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은 채 일을 해야 하는 수영강사들 가운데 성희롱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학시절 수영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모(27)씨도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 호남형의 인상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인 이씨는 2년 전 강남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수영강사로 일을 했다. 그가 맡은 반은 낮 시간대 주부반. 강남의 부유층 사모님들이 그가 맡은 회원들이었다.

신체접촉 많은 운동 강사도 고객에게 성적 모욕 당하는 일 비일비재
데이트 도중 연인에게 강제로 성폭력 당하는 남성 적지 않아

심상치 않은 기운은 첫 수업시간부터 감지됐다. 새로운 젊은 선생님의 등장에 40~50대 중년 여성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 여성 회원들은 처음 만난 사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친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오빠’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쓰는가 하면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을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싫지 않아 성희롱이라는 인식도 하지 못했던 이씨.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들의 신체접촉은 도를 넘어섰다.

“아들 같아서 그래”라는 말로 안심(?)을 시킨 뒤 가슴을 더듬는 회원부터 실수를 가장해 엉덩이를 만지는 회원까지 다양한 방식의 스킨십이 이뤄졌다고 한다. 회원들의 질투심도 이씨를 괴롭혔다. 한 회원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 동작을 봐주면 다른 회원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와 그 회원을 노려보는 등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났던 것. 온갖 성희롱과 신경전에도 꿋꿋이 일을 하던 이씨가 수영강사를 그만둔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에도 유난히 스킨십이 잦아 이씨를 불쾌하게 했던 한 회원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기에 손을 갔다댔고 참지 못했던 그가 그 회원에게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했던 것. 그러나 스포츠센터 측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발뺌하는 여자 회원의 말만 존중했고 이씨가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사건이 무마됐다. 그는 “내가 가르쳤던 회원들이 유독 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수영강사는 생각하기도 싫은 직업이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은 캠퍼스 안에서도 일어난다. 보통 여학생이 많은 학과에 속한 남학생들이 당하는 일이다. 모 대학교에 다니는 김모(22)씨는 “때로 수업시간에 교수님들이 소수의 남학생들을 향해 성적인 농담을 하는데 기분 나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학점에 불이익을 받는 것이 두려워 어필조차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여자선배들의 성희롱도 참기 힘든 수준이란다. 일부러 김씨에게 들으라는 듯 야한 농담을 하거나 “연예인 누구 몸 봤어?”라며 노골적으로 김씨의 몸을 훑는 등의 행위다. 김씨는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힘드니 조치를 취할 수도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이뿐만 아니다. 데이트 중 연인에게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흔히 데이트폭력은 여성들이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대로 여성에게 각종 모멸감을 당하는 남성들도 있다는 것. 이는 최근 설문조사로 나타났다. 대전지역 남자 대학생의 8.5%가 데이트 중 상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

여친도 성폭력 가해자
강제로 성관계까지

대전YWCA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대전지역 남녀 대학생 62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중 성폭력 가해·피해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남성 응답자(281명)의 8.5%(24명)가 ‘의사에 상관없이 키스, 애무, 성관계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성희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 직장성희롱 방지 전문 강사는 “일부 여성들이 남자 직원들에게 성희롱을 하면서도 별다른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당했을 때 남성들도 분명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 김봄내 기자 | 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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