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판결문에 “욕정” 표현은 부적절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07-11-23 11:36:00    조회: 4,587회    댓글: 0
  칠순 노인의  '빗나간 욕정 '이 낳은 살인 참극 "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느껴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
 "이야기를 하던 중 욕정을 느껴 A씨를 폭행한 뒤… "
 "욕정을 채우기위해 집안에 들어가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혐의… "

성폭력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는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와 법조계 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언론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법원에서 법정 문서에 해당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법원의 문제가 크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성폭력 사건 판결문’이나 ‘성폭력 사건 공소장’ 같은 법정 문서에 “욕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

법원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욕정’ 문구

1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06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1년 6개월여 간 대법원에서 운영하는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성폭력 사건 판례를 분석하고, 사법연수원 교육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각 기관에서 사용하는 법정 문서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등의 문구를 삭제하라고 요청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침입하여 훔칠 물건을 찾기 위하여 안방으로 기어가던 도중 인기척에 놀라 잠이 깬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자 (중략) 주먹으로 얼굴을 수회 때려 (중략) 항거불능상태로 가만히 누워있는 피해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중략) 강제로 추행하였다.”(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06.2.10 선고)

“혼자 걸어가는 여대생인 피해자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중략) 치료일수 불상의 음부 외상을 입게 하고 (중략) 피해자를 살해한 후에도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체를 오욕하고 (중략)”(서울서부지방법원 2006.7.27 선고)

“욕정” 표현이 들어간 법원 판결문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까.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직업과 나이대가 다양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 문구가 사용된 판결문을 보여주며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

32세의 한 여성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피의자 변명을 옹호하는 듯한 감정적 용어”라고 말했고, 25세의 한 여성도 “공문서에 적절한 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법적 서류에 편파적이고 비과학적인 표현 사라져야

가해자의 범행 동기나 범죄 원인으로 관례처럼 사용되는 “욕정” 문구가 부적절하고, 편파적일 우려가 있다는 우려는 법조계 전문가들도 제기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성범죄의 수사 과정부터 기소, 재판에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 교육자료에도 이 문구들이 들어가 있고, 검찰서류 작성 사례로 “욕정을 일으켜”라는 문구가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표창원 경찰대학교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성범죄 사건 서류나 기록에 가해자의 범죄동기와 원인과 관련 “욕정이라는 용어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리 범인의 범행 고의성 혹은 계획성을 배제시키는 이러한 용어나 표현을 판결 전에 수사기관이나 기소 기관, 법원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며, 판결 후 판결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런 이유로 표 교수는 “국가 형사사법 절차 내에서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같은 부적절하고 비과학적이고,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조인섭(C&C법률사무소) 변호사 또한 “법조인으로서 처음 사법연수원에서 검찰 실무 교육을 받을 때, 강간과 강제추행죄에는 ‘순간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라는 문구가 항상 들어갔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조문에도 없는 이런 문구가 “피고인이 순간 욕정을 이기지 못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을 정당화해주고, 피고인의 입장에서 피고인을 변호해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사건 판결문 등을 분석하면서, 타 범죄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절도죄의 경우엔 “타인의 재물을 절도할 의사를 가지고”, “금품을 강취할 생각으로“ 등으로 범행 의도를 표현하면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순간의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건 문제라는 것.

때문에 민우회는 성폭력 범행 동기나 범죄를 저지른 목적 등을 명시해야 할 경우, “강간할 의사를 가지고, 강간할 목적으로”라고 기술하는 더욱 적절하고 명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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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범죄’입니다. 그런데 성폭력은 강도,절도,폭행 등의 다른 종류의 범죄와 다르게 분석됩니다. 가령, 다른 범죄들은 ‘가해자’의 심리, 또는 가해 원인을 중심으로 범죄가 구성되고, 조사되며, 분석됩니다. 그러나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떤 원인을 제공했나,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중심으로 범죄가 분석되지요. 그 유명한 ‘피해자 유발론’입니다. 가해자에게 ‘왜 그곳에 있었지?’ ‘왜 그 사람에게 접근했지?’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지?’ ‘왜 저항하지 않았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폭력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는 단 한가지, ‘욕정에 이끌려’ 그랬다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성욕, 즉 본능에 의해서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범죄로 인정되지 않고 개인의 사적인 ‘실수’정도로 생각됩니다. 성폭력은 강도나 폭행과 달리 ‘대처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는 그런 남성 개인의 실수를 ‘이성적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여성으로 인식되며 더 나아가, 그런 실수를 유발하게 한 ‘원인’으로 이해됩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정말로 남성은 성욕, 본능을 참지 못하는 존재이고 여성은 이성적으로 판단, 대처 가능한 존재일까요? 예전부터 내려오는 통념에는 남성은 이성적, 여성은 감성적이고 약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이지요.

두 번째 오류는, 성폭력 가해자가 성폭력이라는 행위를 선택하는 이유는 실제로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강도나 절도 후 성폭력을 저지르는 행위는 ‘입막음’을 위해서입니다. 아내를 구타한 뒤 강간하는 행위는 그 구타를 폭력이 아니라 ‘사적인 부부관계’로 포장하기 위함입니다. 또는 ‘화해의 기법’으로 활용하기도 하지요.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이 화해일까요?) 좋아하는 여성에게 구애를 하기 위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행위 속에는, 그렇게 하면 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 것이지요. 여성이 한 남성과 성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그 여성에게 향해지는 ‘낙인’을 그 남성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성폭력은 실제로 우발적인 성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판단’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세 번째 오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우발적 범죄’ 와 ‘계획된 범죄’ 사이에 큰 죄질의 차이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서는 ‘우발성’이 면죄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우발적’으로 성폭력을 행했는데, 피해자는 그것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또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원인제공을 하거나 계획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가해자의 우발적 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른 범죄의 이름에는 가해자 이름을 붙이지만, 성폭력 사건에는 피해자 이름을 붙이는 태도에서 ‘가해자’ 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강도 예방법’ 이나 ‘폭력 대처법’을 배우지 않으면서 ‘성폭력 예방법’은 배우지요. 이것은 여성의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성폭력을 구성하는 ‘가해자’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이제는 성폭력 범죄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큰 전환이 필요합니다. 성폭력이라는 행위는 그것에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관계없이 가해자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으리란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폭력 사건 해석에서 가해자의 입장이 더 크게 반영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여성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법조계에 ‘신(新) 가해자 중심주의’가 필요합니다. 가해자가 쏙 빠진 성폭력 범죄란 불가능하기에, ‘가해자’의 행위를 중심으로 범죄를 구성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서울여성회 정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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